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황혼

봄날장미 2018. 7. 21. 19:43





      쓸쓸하고 장엄한 노래여

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/ 기형도


 


 


     가라, 어느덧 황혼이다


     살아 있음도 살아 있지 않음도


     이제는 용서할 때


    


     구름이여,


     지우다 만 어느 창백한 생애여


     서럽지 않구나


     어차피 우린 잠시 늦게 타다


     푸시시 꺼질 몇 점 노을이었다


 
 
     이제는 남은 햇빛 두어 폭마저


     밤의 굵은 타래에 참혹히 감겨들고


     곧 어둠 뒤편에선


     스산한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


 
 
     우리는 그리고 차가운 풀섶 위에


     맑은 눈물 몇 잎을 뿌리면서 落下하리라


     그래도 바람은 불고 어둠 속에서


     밤이슬 몇 알을 낚고 있는 흰 꽃들의 흔들림!


 
 
     가라, 구름이여,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해


     이제는 어둠 속에서 빈 몸으로 일어서야 할 때


     그 후에 별이 지고 세상에 새벽이 뜨면


     아아, 쓸쓸하고 장엄한 노래여,


     우리는 서로 등을 떠밀며 피어오르는


     맑은 안개더미 속에 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