봄날장미 2011. 9. 20. 17:28

 

  산그늘에 마음 베인다 / 이기철


  햇빛과 그늘 사이로 오늘 하루도 지나왔다
  일찍 저무는 날일수록 산그늘에 마음 베인다
  손 헤도 별은 내려오지 않고
  언덕을 넘어가지 못하는 나무들만 내 곁에 서 있다
 
  가꾼 삶이 진흙이 되기에는
  저녁놀이 너무 아름답다
  매만져 고통이 반짝이는 날은
  손수건만한 꿈을 헹구어 햇빛에 널고
  덕석 편 자리만큼 희망도 펴놓는다
 
  바람 부는 날은 내 하루도 숨가빠
  꿈 혼자 나부끼는 이 쓸쓸함
  풀뿌리가 다칠까 봐 흙도 골라 딛는
  이 고요함
 
  어느 날 내 눈물 따뜻해지는 날 오면
  나는 내 일생 써온 말씨로 편지를 쓰고
  이름 부르면 어디든 그 자리에 서서 나를 기다릴 사람
  만나러 가리라
 
  써도써도 미진한 시처럼
  가도가도 닿지 못한 햇볕 같은 그리움
  풀잎만이 꿈의 빛깔임을 깨닫는 저녁
  산그늘에 고요히 마음 베인다