카테고리 없음
석양을 바라보다
봄날장미
2019. 9. 6. 09:00
가을 저녁의 시 - 김춘수
누가 죽어가나보다
차마 다 감을 수 없는 눈
반만 뜬 채
이 저녁
누가 죽어가는가 보다
살을 저미는 이세상 외롬 속에서
물 같이 흘러간 그 나날 속에서
오직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
애터지게 부르면서 살아온
그 누가 죽어가는가 보다.
풀과 나무 그리고 산과 언덕
온누리 위에 스며 번진
가을의 저 슬픈 눈을 보아라.
정녕코 오늘 저녁은
비길 수 없이 정한 목숨이 하나
어디로 물 같이 흘러가 버리는가 보다.
서쪽이 없다 / 문인수
지금 저, 환장할 저녁노을 좀 보라고
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떴다, 얼른
현관문을 열고 내다봤다, 지척간에도 시차 때문인지,
없다, 15층짜리
만촌 보성아파트 107동
기역자 건물이 온통 가로막아 본연의 시뻘건 서쪽이 없다
시뻘겋게 녹슬었을 것이다
그 죄 사르지 않는 누구 뒷모습이 있겠느냐
눈물 훔쳐 물든 눈자위, 퉁퉁 부어오른 흉터 같은 것으로 기억하노니
아름다운 여분, 서쪽이 없다
말하자면 나는 이미 그대 사는 곳의 서쪽,
이 집에 이사 온지도 벌써 십년 넘었다, 인생은 자꾸
한 전망 묻혀버린 줄 모른다. 몰랐다. 다만
금세 어두워져, 저문 뒤엔 저물지도 않는다, 어여쁜 친구여
무엇이냐, 분노냐 슬픔이냐 그 속 뒤집어
널어놓고 바라볼 만한 서쪽이 없다.